이런 사람이 있다. 그는 "불황이 곧 홈그라운드"라며, 블랙스완 사건 뒤에 숨은 진정한 가치를 발굴하고, 그로부터 엄청난 수익을 챙겼다. 그는 평생 운, 불확실성, 확률, 그리고 지식을 연구하는 데 헌신했다.
그는 뉴욕과 런던에서 여러 파생금융상품을 거래했으며, 거의 "하락할 때마다 돈을 벌었다"! 1987년 미국 주식 대폭락 때 다우존스 주가지수가 29.2% 폭락하자 그는 4천만 달러(약 540억 원)를 벌었다. 2001년 "9·11" 사건 이후 미국 주식을 공매도해 하룻밤에 큰돈을 벌었다. 인터넷 버블, 러시아 금융위기, 서브프라임 위기까지, 매번 그의 공매도 전략은 완벽하게 적중했다.
그는 현재 가장 존경받는 리스크 관리 이론 학자이자 "블랙스완의 아버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다.
여기까지 말하면 대부분 그를 모를 것이다. "명사"라기보다는 유명한 "인명"에 가깝다. 사실 그의 인생에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기간에 불과 3개월 만에 40배의 수익을 올렸다.
시간을 2020년 1월로 되돌려 보자. 탈레브는 당시 코로나19가 이미 여러 명의 사망자를 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많은 국가에게 당시 팬데믹은 저 멀리 바다 건너의 일이었기에 엄격한 방역 조치가 없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탈레브는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그는 발-얀과 함께 백악관에 메모를 작성해 우려를 상세히 설명했다. 메모는 "팬데믹 발발은 불가피하지만, 적절한 예방 조치를 취하면 전 세계적인 시스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메모는 결국 백악관에 성공적으로 경고하지 못했다.
하지만 탈레브가 재직한 유니버사 인베스트먼트에서 스피츠나겔은 다가올지도 모르는 코로나19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다. 금융위기 속에서 유니버사 인베스트먼트의 장기 목표는 주식 대폭락에서 폭발적인 거액의 수익을 얻는 것이었다.
메모를 보낸 후 첫 월요일,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13% 대폭 하락하며 1987년 "블랙 먼데이" 이후 두 번째로 큰 일일 낙폭을 기록했다. 채권 시장은 정체되었고, 머니마켓펀드는 사상 최대 자금 유출을 겪었으며, 중소 투자자들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월스트리트 베테랑들은 이런 상황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다음 주 동안, 격렬한 변동성이 시장을 짓누르는 가운데 유니버사 인베스트먼트의 투자 수익은 로켓처럼 치솟았다. 3월 말까지 유니버사 인베스트먼트의 "블랙스완 보호 프로토콜" 펀드는 3개월 수익률이 놀랍게도 4144%를 넘었다. 스피츠나겔의 약 5천만 달러(약 675억 원) 베팅은 순식간에 약 30억 달러(약 4조 500억 원)의 수익을 낳아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때는 1975년. 레바논 내전이 발발해 사람들의 일상이 멈췄다. 탈레브의 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문이 소유한 넓은 땅이 전쟁 중 파괴되었고, 가문의 저택도 폐허가 되었다.
폭력을 피하기 위해 15세의 탈레브는 레바논을 탈출해 파리 대학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이주해 세계 최고 경영대학원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 스쿨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탈레브는 처음으로 "옵션"을 접했고, 그것에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을 느꼈다. 그는 옵션에 이상한 특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비선형적이라는 것이다. 일부 거래에서 얻는 이익은 감수한 위험, 즉 옵션에 지불한 1~2달러와 비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위험은 전부 옵션 매도자가 부담하고, 매수자는 1~2달러를 잃을 위험만 있었다.
탈레브가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극히 일어나기 어려운 사건에 대한 옵션이었다. 예컨대 시장의 격렬한 변동이나 회사를 파산으로 몰고 가는 대규모 붕괴 같은 것이다. 이런 옵션은 실제로 매우 저렴했다.
와튼 스쿨 졸업 후, 탈레브는 미국 신탁은행과 프랑스 은행에서 트레이더로 일했다. 26세 때 탈레브는 퍼스트 보스턴 투자은행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탈레브는 유로달러 딥 아웃오브더머니 콜옵션에 대규모 포지션을 쌓기 시작했다. 이 기이한 거래는 회사에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했고, 상사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 하지만 탈레브는 개의치 않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속해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주식 대폭락이 찾아왔다. 바로 1987년 10월 19일 "블랙 먼데이"였다. 글로벌 시장이 아무 이유 없이 미친 듯이 폭락했고, 아무도 원인을 알지 못했다. 그날 다른 트레이더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을 때, 탈레브의 포트폴리오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과를 보였다.
다음 날, 탈레브의 유로달러 포지션이 폭등했다. 그가 2달러나 3달러에 매수한 계약의 가격이 300달러, 400달러, 500달러로 치솟았다. 이 성공적인 거래로 그는 큰돈을 벌었고, 그가 "돈은 개자식"이라고 부르는 자유——재정적 자유를 얻었다.
그는 자신의 《안티프래질》이라는 책에서 자신이 어떻게 무작위와 불확실성의 영역에서 "지배력"을 얻었는지 밝혔다. 어느 날 그는 수업에서 확률과 리스크 관리에 관한 강의를 듣고 즉시 이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즉시 서점으로 달려갔다. "확률"과 "무작위"라는 단어가 들어간 거의 모든 책을 구독한 후, 그는 교수의 진도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이 책들을 "주제별 읽기" 했다.
이후 5년간 그는 무작위 현상 연구에 전심전력했고, 이 시기의 노력은 이후 성공적인 옵션 트레이더 경력의 기초를 다졌다. 그의 트레이딩 경력 또한 그의 "통제력"에 거대한 부의 보답으로 응답했다.